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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일흔에 받은 오스카 초대장, 꿈 이뤘다(영화 미나리)

스타들이야기

by 목련이 필때 2021. 3. 1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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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후보 발표
영화 '미나리' 6개 노미네이트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 연기상 지명
오스카 최초 입성 기록
입국 후 자가격리中
"혼자 술마시며 자축"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초대장을 받았다. 지난해 '기생충'이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4관왕을 차지하며 새 역사를 썼지만, 한국인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74세에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며 유의미한 발자국을 새겼다.

 

15일 오후 9시 19분 2021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에서 '미나리'가 작품상, 감독상(정이삭),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각본상(정이삭),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아시아 배우가 해당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된 것은 '사요나라'(1957) 우메키 미요시, 쇼레 아그다슐루(2003) '바벨'(2007) 키쿠치 린코에 이어 네 번째다. 수상할 경우 일본계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아시아 역대 두 번째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된다. 남우조연상은 캄보디아인 행 응고르가 1985년 '킬링 피드'로 유일하게 수상한 바 있다.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플랜B가 제작하고 북미 배급사 A24가 만든 영화 '미나리'는 북미 안팎에서 91개 트로피를 받으며 오스카 레이스를 착실히 이어왔다.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은 저예산 작품이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팬데믹 여파로 전 세계 개봉 신작이 없다는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배우 스티븐 연이 중심을 잡았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미나리'에서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이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외신은 그의 연기를 주목했고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인 배우, 게다가 주인공에 주목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눈길을 끄는 건 윤여정의 주목도가 높다는 점이다. 한국인 할머니 순자를 자신만의 빛깔로 숨결을 불어 넣은 윤여정의 연기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저 그런, 똑같은 할머니, 엄마. 그건 하기 싫었다"며 배역에 색을 칠하고 깎고 부숴가며 순자를 완성했고, 배우 개성이 배역과 어우러져 유니크한 빛을 냈다. 북미 개봉 후 순자의 쿨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에 좋은 반응이 이어졌고, 현지에서 연기상을 휩쓸었다.

 

윤여정은 미 비평가위원회부터 LA, 워싱턴 DC,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온라인,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오클라호마,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뮤직시티, 노스캐롤라이나, 노스텍사스, 뉴멕시코, 샌디에이고, 아이오와, 콜럼버스, 사우스이스턴, 밴쿠버, 디스커싱필름, 미국 흑인, 피닉스, 온라인 여성, 할리우드, 디트로이트 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라티노 엔터테인먼트 기자협회,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골드 리스트 시상식,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국제 온라인 시네마 어워즈까지 32개 연기상을 받으며 오스카에 한발 다가섰다.

 

주요 외신은 윤여정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한국 배우 최초로 현지 레드카펫에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6개 후보에 오르며 수상 청신호를 켰지만, 송강호 등 연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한 점은 아쉬웠기에 더 큰 기대가 쏠렸다.

 

이러한 관심에 윤여정은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미나리' 기자간담회에서 "식당에 갔는데 어떤 분께서 '오스카 축하드려요'라더라. 후보에 오른 것도 아닌데 다들 후보에 오른 줄로 안다. 후보에 오르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다"며 솔직한 소감을 말했다.

 

'미나리'는 미국 시골 마을에서 정말 고생하며 찍은 영화였어요. 거창한 호텔이 아닌 작은 숙소에 머무르며 적은 제작비로 찍은 작품인데 이렇게 주목받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윤여정은 자신을 '노(老) 배우'라 칭하며 마음에 담은 부담을 재치 있게 털어버리기도 했다. 최근 국내 언론시사회에서 영상으로 인사를 전한 그는 "나는 나이 많은 노배우다.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뤄내는 걸 볼 때면 장하고 애국심이 폭발한다. 지금 상을 받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걸 상상하고 만들지 않았다"며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윤여정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애플TV '파칭코' 촬영을 마친 후 지난 15일 귀국해 자가격리 중이다. AP통신을 통해 "공항에서 돌아와 짐도 풀지 못했다. 밴쿠버에서부터 함께 온 친구와 우리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동행인은 제작자 이인아 씨다.

 

윤여정은 "그 친구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갑자기 '와 후보 지명 됐어요' 하더라. 친구는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멍해졌다"며 "친구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정이삭 감독을 소개해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자가격리 중이라 사람들이 축하해주러 오지 못한다. 그래서 인아와 함께 축하할 예정이다. 문제는 그가 술을 못 마셔서 혼자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마시는 걸 지켜봐야 한다."

 

윤여정은 후보 지명에 놀란 것도 잠시,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다. 솔직하고 호쾌했다. 여유로우면서도 무게잡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와의 인터뷰는 늘 즐거웠다. 판에 박힌 답변이 아닌 살아있는 말을 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쌓아 올린 세월만큼 더 정제된 언어를 구사할 법하지만, 그는 달랐다. 솔직하고 꾸미지 않았다. "이 나이에 솔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앞에 앉은 기자를 진심으로 대했다. 윤여정의 소감이나 순자가 사랑받는 상황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인상적인 일화도 있다. 앞서 외신들이 그를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 소개하자 윤여정이 "그분과 비교는 감사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 저는 그저 저 자신이 되고 싶다"는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윤여정은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55년째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71년 영화 '화녀'로 여우주연상과 신인상 등을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75년 결혼 후 미국으로 향하며 잠시 공백을 가졌다. 13년 만에 이혼한 뒤 연예계에 복귀한 그는 더욱 활발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2005), '내 마음이 들리니'(2011) 등에서는 깊이 있는 감정 연기로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스크린 활약이 두드러졌다. 임상수 감독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투병 중인 남편을 뒤로한 채 불륜을 선언하는 시모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품을 선택할 땐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윤여정의 말처럼 그는 신뢰 관계를 형성한 연출자와 작업을 이어왔다. 임상수 감독과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재용 감독과도 '여배우들'(2009)과 '죽여주는 여자'(2016) 작업을 함께 했으며,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을 통해 홍상수 감독과도 손발을 맞췄다.

 

'죽여주는 여자'(2016)를 통해서는 종로 일대에서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하며 어두운 이면을 통해 인간 욕망을 그려냈다.

 

독립영화에도 출연했다. '미나리'도 미국에서 제작한 독립영화다. 윤여정은 "대본이 좋았고 정이삭 감독을 만난 후 출연을 결심했다. 물론 고생할 께 뻔해 하기 싫었지만 하고 싶었다"며 출연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 주목 받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노개런티 출연으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

 

윤여정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꿈과 도전에 나이가 있을까. 일각의 우려를 깨부수고 일흔의 나이에 드레스를 맞추는 모습은 고정관념을 넘어선 유쾌한 도전으로 읽힌다.

 

이제 우리의 눈과 기대가 할리우드로 향한다. 윤여정의 수상은 가능할까. 그는 '보랏 서브시퀀드 무비' 마리아 바카로바, '힐빌리의 노래' 글랜 클로즈, '더 파더' 올리비아 콜맨, '맹크'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여우조연상을 놓고 경합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4월 26일 오전(한국시간, 현지시간 4월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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